고심 끝에... 결정했다.
사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크게 고민할 필요도 없는 대선이다.
군소 후보들을 제외하고 다섯 후보들만 따져보면 내 눈엔 이렇게 보인다.
한 명은 약자팔이, 진보팔이로 연명하며 야권에 뒷통수만 갈겨대는 메갈 품은 정당의 수장.
한 명은 말이 필요없는, 대한민국을 수십 년간 병들게 만든 적폐 그 자체.
한 명은 침몰하는 503호에서 빠져나와 이미지 세탁을 획책하고 뉴라이트까지 품은 자들의 대표.
한 명은 반장선거에 나온 초등학생마냥 징징대며 철학도 신념도 없고 야권 정치벌레를 품은 어린아이.
따라서 내 기준에서 남는 것은 단 한 명이다. 대한민국이 한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이제 그 수명이 다한 구시대의 썩은 고리를 끊어내어야 한다. 애민과 애국 두 가지가 결여된 자들이 더 이상 대한민국의 권력을 쥐어서는 안 된다. 이 나라의 보수라는 집단은 그 시작부터 친일이라는 썩은 뿌리에서 돋아났다. 그리고 참으로 고맙게도 그들이 반공이라는 가면을 쓰고 수십 년간 해먹을 명분을 만들어준 북괴가 있었다. 그동안 이들의 적대적 공생관계 속에 희생된 사람들과 좀먹힌 민족의 미래는 과연 누가 헤아려줄 것인가? 아직도 이 땅에는 동족상잔의 상흔이 선명하게 남아있기에, 자칭 보수들이 우리의 상처를 들쑤시며 부추기는 불안감은 현재진행형이다. 이제는 국가와 민족의 백년대계를 보아야 한다. 성장 일변도의 정책은 경제 성장이라는 과실을 주었으나, 시대가 바뀐 오늘날에는 경제적 불평등과 정경유착이라는 부작용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북괴와 적대로 일관하는 정책은 내부 결속과 함께 일부에겐 청량감을 선사했을지는 모르나, 안보팔이 정권의 생명 유지 외에는 악화일로로 치달을 뿐 뚜렷한 탈출구가 없다.
입만 터는 정치벌레들의 시대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한다. 여권이든 야권이든 이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이용할뿐,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정치가 이렇게나 오래 지속된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당내 민주주의가 결여돼 있었다. 둘째, 개나 시체를 내놔도 당선되는 지역주의가 있었다. 셋째, 그러한 마르지 않는 텃밭을 나눠먹으려는 계파정치와 기회주의자들의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보수정당은 물론 항상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야권에서도 이러한 역겨운 행태는 전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기적같은 다크나이트의 등장과 503호의 실정으로 정치벌레들이 대부분 빠져나가고 당내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정당이 탄생했고, 그 중심에는 깨어 있는 시민들이 있었다.
연평도 포격을 당하고도 지하 벙커에서 미국 눈치나 보던 안보팔이들을 국민은 똑똑히 기억한다. 국방예산은 깎아먹고 강바닥을 파내던 서생원들을 똑똑히 기억한다. 푼돈에 민족의 한을 팔아넘긴 "왜"교부의 위안부 합의를 똑똑히 기억한다. 중국에 뺨 맞고 미국에 뺨 맞고 일본에 뺨 맞고 그러면서도 주인님의 어느 바짓가랑이를 잡아야 잘 붙어있을지만 고민하는 놈들을 똑똑히 기억한다. 독립투사를 테러리스트로 비유하며 임시정부 적통을 부정하는 뉴라이트를 누가 품었는지 똑똑히 기억한다.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결단력 있는 대통령을 원한다. 민족의 미래를 걱정하는 애국자 대통령을 원한다. 국격을 드높이는 상식적인 대통령을 원한다. 민초의 애환을 모른 체 하는 싸이코패스가 아닌 대통령을 원한다.
그런데 상식과 균형감이 결여된 것이 분명한 세력이 그에게 묻었다. 특히나 그 세력과는 대척점에 있는 이해당사자 중의 하나이기에 그냥 웃어 넘기기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연거푸 소통을 시도하며 나름의 방식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해당 캠프의 반응은 불통 그 자체였다. 긴 시간 동안 함께 하다 보니 이미 유착이 심해져 한 몸이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으며, 이로 인해 무효표 운동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일말의 소통조차 불가한 모습에 배신감의 크기는 생각보다 컸고, 생각보다 넓었다. 그렇게 고민을 시작한지 두 달 가량이 지났고, 어느덧 대선일이 밝았다. 이미 무효표를 낸 사람도, 대의를 위해 한 표를 행사한 사람도 모두 뒷맛이 찝찝함을 토로하고 있다. 축제가 될 줄 알았던 대선날이, 누군가에겐 남의 잔치가 되었다. 지금 글을 쓰는 본인도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나는 대의를 택했다. 내 스스로 내 머리에 총질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이미 수많은 총구가 우리를 겨누고 있는 와중에 한 총구가 싫다고 외면하는 것은 실익이 없다는 판단도 있었다. 그런데 이유가 이것뿐이었다면 결코 표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변화의 가능성을 믿고 있다. 지난 날 대한민국의 정치는 보수팔이와 안보팔이로 비대하게 성장한 비상식 세력과, 깨어 있는 시민들의 열망을 "일부"나마 반영하는 야권 세력과의 싸움이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이러한 줄다리기를 하려면 사상적 스펙트럼 따위는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고,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는 연대뿐이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희망을 보고 있다. 503호의 기행으로부터 비롯된 보수세력의 와해는 장기적으로 "야권"이나 "진보진영"으로 불리는 세력이 숨쉴 공간을 넓혀 줄 것이고, 그 결과 찌그러져 있던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은 좋든 싫든 한 배를 탈 수밖에 없는 여성주의자들이나 종북주의자들 같은 독소세력들도 점진적으로는 분리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것은 뇌내망상일 뿐이다. 나와 같은 선택을 한 사람이든, 다른 선택을 한 사람이든, 같은 문제로 고민을 하던 사람이라면 역대 어떤 선거보다도 무거운 마음으로 투표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우리의 예상과 다른 사람이 당선이 된다 해도 별로 미안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젊은 남성 세대를 버린 그들 탓이니까. 물론 그런 일은 없기를 바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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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이 혼란스럽다.
길고 긴 세월 동안 그토록 염원했던 이명박근혜 정권의 종말이 드디어 눈앞으로 다가왔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분노에 떨고, 치를 떨고, 두려움에 떨던 순간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집권 여당이 IMF를 일으켰음에도 기적처럼 나타났지만, 시간이 흐르며 어느덧 당연한 듯 여겼던 민주적 정부와 탈권위주의적 사회 분위기는 못 해먹어서 배고파진 이리떼의 잃어버린 10년 타령과 함께 철저히 짓밟혔다. 펜을 잡은 이리떼, 법전을 든 이리떼, 상아탑에 기생하는 이리떼, 그리고 돈을 움켜쥔 이리떼들은 그렇게 자신들을 인간처럼 대해주었던 대통령이 그들의 목줄을 놓자마자 시해했다. 또한 새롭게 목줄을 움켜쥐고 짐승의 노래를 목 놓아 불러주는 새 주인을 향해 충성을 맹세했고, 이들은 덩실덩실 함께 춤추며 민초와 국부를 도륙 내고 그 끝을 알 수 없는 허기를 채웠다. 다시는 잃고 싶지 않은 그들만의 세상을 공고히 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우주의 기운이 대한민국을 도와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덕분에 칠흑같이 어두웠던 금수의 시간이 끝나고 마침내 다시 사람의 세상이 도래하려 한다.
엄혹했던 야만의 시간을 떠올리면 절절한 마음에 눈물지으며 삼보일배라도 하면서 투표장으로 향하고 싶다. 조국 광복을 눈앞에 두었던 대한의 백성들이 이런 마음이었을까 싶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민심도 호의적이지만, 아직도 사람의 탈을 쓴 이리떼들이 짐승의 체취를 풍기며 발악 중이라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티끌만 한 힘이라도 모두 모아 다 함께 희망의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데에 동의한다. 반드시 적폐 세력으로부터 정권을 되찾아서 우리를 짓눌렀던 목줄을 풀어헤치고 인간다운 삶을 되찾아야 한다. 그리고 당연히 내 목줄도, 우리의 목줄도 함께 풀려나길 기도했다.
그런데 나를 비롯한 일부가 간과한 점이 있었으니 우리도 누군가에겐 사람이 아닌 똥개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똥개들의 목줄은 당장은 풀리지 않을 것 같다. 모두가 알면서도 외면했지만, 사람 사는 세상을 추구하는 세력 속에 여우 무리가 똬리를 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특유의 둔갑술로 똥개들을 유린하며 본인들의 인간다운 삶만을 추구했다. 그런데 똥개들은 아무런 힘도 없으니 짖어도 짖어도 들어주지 않는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여우떼의 배가 찰 때까지 똥개들은 또 물어뜯겨야 할 것이다. 광복 후 조국 분단과 친일파의 세상을 본 대한의 백성들이 이런 마음이었을까 싶다.
더 이상 징징거리는 것도 지친다. 그리고 이러다가 천지개벽을 가져올 천재일우의 기회를 망쳐버리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실상 똥개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도 거의 없다. 그저 이리떼보단 덜 아프겠지, 언젠간 우리도 목줄을 풀고 자유를 찾을 날이 있겠지 하며 마른침을 삼킬 뿐이다. 절대로 이리떼의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지나간 세월을 돌이켜보면 선뜻 마음이 동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아마도 이리떼의 세상이 끝나고 여우떼의 배까지 모조리 채우고 나면 우리의 목줄도 신경 써 주지 않을까? 그리고 누구보다 똥개들의 하울링에 귀를 기울여 주었던 어느 고마운 목동의 말을 믿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런데 그 날이 오면, 과연 우리는 여우떼를 몰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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